본인은 자연과 산업이 어우러진 환경에서 살았다. 산업현장에서 365일 반짝이는 무수한 공장의 불빛과 멈추지 않는 굴뚝 연기는 밤하늘의 별과 달, 구름을 연상시켜 유토피아 세상으로 향하는 상상의 나래를 펼치게 하였다. 밤하늘을 수놓은 불빛들의 향연은 별이 되어 반짝였고, 사람들의 꿈과 이상을 향한 희망의 세계는 연속적인 선으로 표현되어 하늘과 땅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끈의 의미로 확장되었다. 이러한 어울림 속 각기 다른 모습들은 저마다 아름다웠고 특히, 꽃들과 함께 할 때면 아름다움은 극대화되었다. 무한한 바다가 담고 있는 생성, 소멸과 군상들의 삶을 관조하면서 공존과 공감을 이끄는 에너지를 얻었고, 이는 본인 창작 정신활동의 모티브로 작업의 중심에 있게 되었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희미해져가는 기억들을 영원히 담아내고 회고하기 위한 욕구가 그림을 그리기 위한 동기가 된 것이다. 자연과 산업단지가 공존된 고향 여수시는 언제나 작업의 소재가 되었고, 숲의 견고한 녹색 잎과 푸른 바다는 예술인의 감수성과 작품 안 푸른 색채를 담아내는데 많은 영향을 주었다. 자연의 역동적인 움직임을 보면서 사실적인 기법으로 그림을 그렸던 작업 방식의 변화는 비구상으로 시도되었다. 사계절 자연이 발산하는 무한한 에너지와 여러 형태들을 지켜보며 대상의 내면을 읽었고, 그 자연의 소리에 귀를 기울인 결과 주관적 심상표현을 통해 추상적 작품세계를 구축할 수 있었다. 이렇듯 자연의 순고함은 보이는 외형 그대로를 모방하는 단순함에 그치지 않고 꽃과 열매가 맺기까지의 인내와 고통을 우리들의 삶과 연계시켜 새롭게 각색하여 재해석되었다.
자연과 많은 사람들이 만들어가는 규칙의 조화, 변형과 왜곡을 통해 내적인 상징성을 선과 면으로 구성하였고, 캔버스에 흰색을 뒤덮으며 인간 본연의 맑은 심상을 비현실적이고 몽상적인 풍경세계로 이끌어갔다. 반들거리고 기름진 나무의 잎사귀, 형형색색의 꽃과 나비들은 현실을 초월하여 환상적 회화 세계로의 여행을 경험하는 동화의 느낌으로 다가왔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느끼는 고독과 슬픔을 작품 위에 물감을 뿌리고 긁어내는 과정을 반복하는 방식을 통해 나타내고자 했다. 또한, 자연에서 얻어낸 성찰은 생성과 소멸의 순환과정을 상징하는 반복적인 행위에 의해 생성된 두터운 물감 층에 고스란히 기록되어 있다. 꽃송이를 화면 가득 채운 작품에서는 꽃 주변의 검은 윤곽선으로 그 존재감을 한층 강렬하게 표현하였는데, 이는 현실 속에서 잃어버리고 살아가는 본인의 정체성을 표현하기 위함이다. 또한 방사선 형태로 꽃잎을 배열시킴으로써 생동감을 야기하여 생성의 에너지를 나타내고자 하였다. 작품 속에 빈번히 등장하는 항아리 모형은 사회가 거짓으로 눈과 마음을 흔들어 놓아도 인간 본심의 진실을 지켜 나간다는 의미를 반영하여 굳건한 의미로 작품 중심에 등장시켰다.
본인의 그림에는 즐거움과 음악적인 운율이 담긴 선들로 자유분방함이 담겨있다. 집요함이나 욕심이 없는 그림이라 화면이 서정적이고, 무의식 속에서 처음부터 계획하지 않은 것처럼 붓 가는 데로 그린 흔적은 사람들에게 편안함을 주기위한 것이다. 눈에 보이는 사실적 이미지 대신 추상적 표현으로 회화적인 사상 및 철학(믿음, 소망, 사랑, 맑음)을 응축시켰고 Fragment of light, Fragrance of nature 명제를 가진 일련의 작품들은 본인의 내면세계로 향하도록 유도하는 심상 표현으로, 조형 안에 또 다른 조형을 품어 자연과 사람이 공생의 관계로서 서로 조화를 이루는 희망을 메시지로 남겼다.
본인에게 작업은 호흡과 같다. 작업의 지속은 겸허하고 감사한 마음으로 충실히 자신의 삶을 표현하는 것이며 호흡하듯이 진행된다. 또한, 흘러가는 시간 속 경험에 대한 물음이라고 생각한다. 삶이 예술을 통해 우리에게 무엇을 전하려는 것일까? 답변으로 본인은 순수 자연을 닮은 사랑이라는 것을 작품 안에 남겨 사람들에게 전달하고자 한다. (유경자 작품론 中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