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아發芽의 조건
김영덕
산기슭 할머니 밭뙈기에
허리 같은 호미로 호박씨 강낭콩 심어놓고
아침저녁으로 정을 줘도 감감무소식
심은 자리 헤쳐보지만
봄 가뭄에 씨앗은 잠꾸러기다
기다리다 못한 할머니는
큰 음료수 병 두 개에 물을 담아
안약 같은 물을 주고
뒷산에 비 묻어올까 목만 길어졌다
간절한 할머니 마음이 하늘에 닿아
밤새 단비가 내렸다
마음 급한 씨앗들은 고깔을 쓴 채 달려 나왔다
이마가 땅에 닿을 것 같은 할머니는
벌써 풍성한 가을 밭두렁에 앉았다
나는 아직도 깊이 잠든 시의 씨에
발아할 단비를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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