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구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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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병연

포구나무

관리자 0 518 2020.08.30 13:29




포구나무

 

하병연

 

 

1

한 가지가 다른 가지에 손 내밀자

파도가 나무의 관자놀이 마구 쳐대요

 

2

그대를 보고 온 뒤로부터

내 안에 흐느끼는 가지 끝에서

붉은 노을 들어와 살아요

노을빛 비치는 언덕 위에는 포구나무 숲이 있어요

 

3

겁먹지 말아요

 

4

어둠이 파도처럼 몰려와요

저 별의 도둑 같은 어둠 다 숨겨줄 수 있는 숲으로

어서 빨리 숨어야 해요

 

5

매우 드문 일이지만 포구나무 숲에는 유자 향이 나요

땅속 깊이 숨어 사는 이가

나무 꼭대기 위에 올라 노랗게 익은 유자로 매달려요

바람 불면 그 열매 흔들거려 향이 더 짙고 짙어요

 

6

이제 몸에 붙은 이파리 모두 떨어뜨리고

온전히 벗은 몸으로 그대에게 가고 싶어요

 

7

포구나무 위에 불붙은 하늘 보여요

그 아래 작은 벌레처럼 사람들이 모여 살아요

 

8

바람 불면 붉은 꽃이 필거예요

내 안의 붉은 밭이 활활 타오를 거예요

그 꽃이 그대와 나, 모두 다 태울 거예요

 

9

기다란 장어가 앞으로 나아가 푸른 바다 되 듯

그대와 나의 뜨거운 숨이 공중 하늘 되어요

 

10

나무로서 물에 순종함은 나무가 물을 따르는 것인 데

물은 담아낼 수 없는 흐름으로 나무속에서 흘러요

 

11

나무는 세상의 폭정만큼 많은 팔을 벌리고 있어요

 

12

속절없이 온몸에 열매 매달려요

어찌하죠?

이 열매 다 떨어지고 나면

저 바닷물이 다 말라버릴 것 같은 데……

 

13

겁먹지 말아요

 

14

이미

젖은

그대와 나 사이에

이 바다의 별들이 자라고 있으니까요

 

soil-poe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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