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어렸을 적 초등학교
저학년이었을 어느 날이었습니다.
학교가 끝나고 집으로 왔는데
이웃집 아주머니들 여럿이 어머니와 얘기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무슨 재미난 얘기를 나누는지 웃음소리가 대문 밖에까지 들릴 정도였습니다.
학교가 끝나고
“학교 다녀왔습니다!”하며
씩씩하게 대문을 들어서는 저를 보더니
이웃집에 사는 원태 어머니가 말씀하셨습니다.
“다리 밑에서 주워 온 아이가 왔네?”
그런데 그 옆에 계시던 정인이 엄마도
“아~ 그때 주워온 아이가 저 아이구나”하셨습니다.
저는 책가방을 마루에 던지며
퉁명스럽게 말했습니다.
“아녜요, 우리 엄마가 나를 낳았어요.”
저의 말이 땅바닥에 떨어지기도 전에
그 옆에서 고추를 다듬던 문숙이 엄마가 제 말을 대뜸 받아
말씀하셨습니다.
“아냐, 니 엄마가 니를 다리 밑에서
주워 온 것을 그때 내가 분명히 봤어!”
상황이 이정도 되면
“완규는 내가 낳았어요.”하고 말씀하셔야 할 어머니는
아무 말도 없이 그냥 웃고만 계셨습니다.
평소에 거짓말을 하지 않던
문숙이 엄마까지 다리 밑에서 주워온 저를 봤다는데
제가 어찌 겁이 안 날 수가 있겠습니까.
그러고 보니 언젠가 어머니께서
“너를 다리 밑에서 주워왔다”고 말씀하신 기억이
떠올랐기에 겁이 더 났습니다.
“아녜요, 분명히 우리 엄마가 저를 낳았어요!!”
저는 이렇게 악을 썼습니다.
그때 저의 목소리는 담벼락을 넘어
지붕을 타고 높이 올라갔습니다.
그때 제가 제대로
걸려들었음을 확인한
동네 아주머니들은 아주 신이 났습니다.
“아냐, 너를 다리 밑에서 주워온 거 맞아!”
“아직도 저 아이가 그것을 모른가벼…”
저는 코를 씩씩거리고
어깨까지 들썩거리며 아주머니 한 사람 한 사람이
말을 할 때마다 그 아주머니를 매섭게 쏘아보고 있는데
한 아주머니가 저에게 결정타를 날렸습니다.
“못 믿겠으면 니 엄마가 옆에 있으니 니가 직접 물어봐”
저는 거의 울상이 되어있는데
어머니께서는 그때까지도 웃고만 계셨습니다.
그 모습에 왈칵 눈물이 났습니다.
그래서 어머니에게
따지듯이 물었습니다.
“엄마! 정말이야?”
저는 어머니에게 분명 이렇게 말했지만
사실 이 말은 눈물까지 아롱진 저의 딸꾹질 발음이었기에
어머니나 동네 아주머니들이 알아듣기엔 불분명하였을 것입니다.
단지, 분위기로
제가 무슨 말을 했는지 눈치로
알아들었을 것입니다.
“그럼 우리 엄마는 어딨는데?”
드디어 울음이
터지고 말았습니다.
아주머니들도 지지 않고 말했습니다.
“니 엄마 찾으려면
서시장 다리 밑에 가봐.
니 엄마가 거기서 생선 팔고 있으니까.”
당사자인 어머니는
대답이 없이 웃고만 계셨습니다.
사실 어제만 해도
제가 10원만 달라고 했는데
“나를 시장에 내다 팔아라.”고 말씀하셨던
어머니였습니다.
더구나 증인들까지 이렇게 많으니
저는 이 분이 제 엄마가 아닌 것이 확실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일부러
있는 힘껏 발을 쿵쿵거리며
마루를 지나서 안방으로 갔습니다.
그리고는 꽃무늬가 그려져 있는
보자기 하나를 꺼내서 장롱 속에 있는
제 옷을 싸기 시작했습니다.
그런 제 모습을 보고
아주머니 한 분이 좋아 죽겠다는 표정으로 물었습니다.
“니, 지금 뭐하냐?”
“울 엄마한테 갈 꺼야!”
제 목소리는 제법 표독스러웠고
잔뜩 독이 올라 있었습니다.
‘내 엄마도 아닌데, 뭘…….’
제 얼굴은 이미
눈물 반, 콧물 반으로 범벅이 됐고
서러움에 어깨까지 들썩이며 옷 보따리를 쌌습니다.
서시장 다리 밑에서
생선 장사를 하고 있는 진짜 울 엄마를
찾아가기 위해서 말입니다.
그 정신에 어떻게 옷 보따리까지
챙길 생각을 했는지 지금 생각해도
황당하긴 합니다.
이렇게 상황이 심각하게 돌아가자
그때서야 어머니는 방으로 들어와 저를 안으며
"아이고 내 새끼!" 하면서
"니 엄마는 나야! 내가 너를 낳았어."
하셨습니다.
어머니의 그 말에 저는
어머니가 돌아가시기라도 한 것처럼
대성통곡을 하며 울었습니다.
그리고 어머니에게
있는 힘껏 고함을 질렀습니다.
“저 아줌마들이 아니라고 하잖아!!!!”
세상에 믿을 사람이
아무도 없는 상황에서
이제는 어머니의 말도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급기야 두 다리를 쭉 뻗고
목청껏 울고 있는 저에게 어머니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아줌마들이 너를 놀리려고 그런 거야.”
동네 아주머니들은 깔깔대며
웃기만 하는데 저만 서럽기만 했습니다.
그렇지만
그 일이 있고도 한참 동안이나
저는 울 엄마가 진짜 울 엄마인지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못했습니다.
사실 따지고 보면 제가
어머니 다리 밑에서 나왔지
어머니 머리 꼭대기에서 태어난 것은 아닌데 말입니다.
그나저나
서시장에서 생선 팔고 계시던
울 어머니는 지금 잘 계시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어제는 혹시나 하고
둘째 아이에게 이렇게 물어봤습니다.
“너를 다리 밑에서 주워왔는데 너 혹시 그거 알아?”
by 장터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