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고향마을 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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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의 추억

제 고향마을 도원

관리자 0 738 2020.08.26 2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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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지금

제가 태어난 고향 마을에서

1km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 살고 있습니다.


비록 지금은 고향 마을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없지만

마음 속의 고향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습니다.


어렸을 적에 우리 집이

여수로 이사 나오기 전까지 저는

이곳 고향 마을에서 살았습니다.  



지금의 도원사거리에서 부영5단지를 거쳐

KBC방송국에 이르는 길옆에는 논들이 줄지어 있었고

그 옆에는 작은 시냇물이 흘렀습니다.


그곳에서

저와 친구들은 멱을 감고,

붕어를 잡고, 피리를 잡고, 개구리를 잡아먹고 놀았지요.


논이 있고, 밭이 있고,

시냇물이 있고, 오솔길이 있고,

소가 있고, 염소가 있고, 도란거리는 이야기가 

끊임없이 이어지던 따스한 마을.


그곳이 바로

제 고향 마을인 도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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밝은 달 아래

호박꽃이 환한 저녁이면

앞벌 논가에서 소낙비 소리처럼 개구리가

단체로 개굴개굴 울어댔습니다.


“시끄럽다. 조용해라!”


이렇게 외치며 논 가운데 돌 하나를 던지면

마치 저의 말귀를 알아듣는 것처럼

개구리들의 울음은 일시에 그쳤습니다.


그러면 저는 어깨를 으쓱거리며

의기양양하게 집으로 향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집에 돌아오면

넓은 마당어귀 이곳저곳에 모깃불이 피워지고

그 옆에는 처마 밑에 매달아 둔 멍석이 깔려져 있었습니다.


여름날에는 까실까실한

멍석의 감촉이 참 좋았습니다.


멍석 위에 누우면

하늘의 별이 무더기로 쏟아졌고,

가끔은 별똥별이 긴 꼬리를 물고 지나가는 것도 보였습니다.


그렇게 멍석에 누우면 할머니는

별처럼 머언 옛날 얘기를 들려주기도 했습니다.

그러면 또 어김없이 함지박에는 갓 쪄서 김이

모락모락 나는 노란 감자가 먹음직스럽게

담겨져 나왔습니다.


저녁을 먹고 동구 밖으로 나오면

집집마다 엉겅퀴와 쑥대 등을 말린 건초들에 모깃불을 지피고

그 모깃불 연기는 굴뚝처럼 하늘로 높이 솟아올랐습니다.


그때는

비가 오는 날이 아니면

날마다 하늘에는 별이 총총했습니다.


그렇게 멍석 위에 누워서 별을 세다보면

모깃불의 연기도 차츰 가늘어지고 동네 사람들은

하나 둘씩 마당의 멍석위에서 잠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여름날이면

별 아래서 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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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고향에 대한 그리움은

인간의 감성 중 가장 순수하고

아름답고 고결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저는 지금도 고향마을을 떠올릴 때마다

정지용 시인의 '향수'가 떠오르곤 합니다.

가수 이동원과 성악가 박인수가 함께 불러서

명곡이 되었던 노래입니다.


정지용 시인이 자신의

고향마을을 생각하며 이 시를 지었다고 하는데

이 시는 제 고향마을을 노래한 시이기도 합니다.


누구에게나 고향 마을은

흑백 사진으로 모두의 기억 속에

남아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 이야기 지즐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그 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뷔인 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
엷은 졸음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
짚벼개를 돋아 고이시는 곳,
― 그 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흙에서 자란 내 마음
파아란 하늘 빛이 그리워
함부로 쏜 화살을 찾으려
풀섶 이슬에 함추름 휘적시던 곳,
― 그 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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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용 시인의 '향수'처럼

고향은 절대로 지워지지 않는 영상으로

제 기억 속에 남아있습니다.


이렇게 시골에서 태어나

시골에서 자랄 수 있었던 것은 제게 있어

대단한 행운이고 축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옛날은 지금처럼

물질적으로 풍요롭지도 않았고,

먹을 것도 풍족하지 않았지만 늘 행복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행복하다"

말하는 사람을 찾아보기란 쉽지 않습니다.

과거보다 훨씬 더 풍요로운 세상에 살고 있는데도 말입니다.


물질적이고 세속적인 풍요로움이

결코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느끼면서

'옛날이 좋았다'는 무상함으로 오늘도 저의 입에서는

노래 하나가 흘러나옵니다.

♬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 뷔인 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
♬ 엷은 졸음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
♬ 짚벼개를 돋아 고이시는 곳…


by 장터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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