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어린 시절의 오동도와 신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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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의 추억

내 어린 시절의 오동도와 신항

관리자 0 685 2020.08.26 2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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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 사진인데 이 때는 오동도가 외로운 섬으로 있었네요>



제 어린 시절의 여름은

오동도가 보이는 수정동 앞바다의

신항에서 시작됐습니다.


지금은 여수세계박람회장이 들어서

옛 흔적은 찾아볼 수도 없지만 제가

초등학생이었고 중학생이었던 그 때의 신항은

제 어린 시절 제 여름날의 대부분을 보냈던 장소이기도 했습니다.

 

이곳은 대형 화물선이 수시로

드나드는 항구여서 수심도 아주 깊었습니다.

우리는 그 배들 사이를 오가며 수영을 하고 놀았지요.


지금 같으면 위험하다며

우리의 부모들이 기겁을 했겠지만

그 당시는 모두가 먹고 살기에 바빴던 시절이라 

우리의 부모들은 누구도 그곳에서 수영하는 우리를

막아서는 법은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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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사진은 1982년 신항 일대 모습입니다>

 


우리는 이곳에서 수영을 배웠고

어린 청춘의 대부분을 보냈기 때문에

수심이 깊다는 것은 우리에게 전혀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이곳을 찾는 사람이 드물어서

우리가 맘껏 소리치며 뛰어놀기에는

매우 안성맞춤인 곳이었습니다.


그 때 우리는 수영복도 없었습니다.

아무 곳에나 옷을 벗어 놓고 한 손으로 고추를 잡고

바다에 풍덩 몸을 던지면 그만이었습니다.


5M 이상 되는 부두에서

검푸른 바다를 향해 몸을 날려 다이빙을 하면

우리는 물속으로 한참 동안을 들어가는데

그때 그 기분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의

쾌감을 주었습니다.

 

그 당시 우리가 수영하는 신항에는

하루에도 두세 차례씩 여수와 부산을

오가는 엔젤호가 지나갔습니다.

엔젤호는 양 옆에 날개가 있어서

마치 바다 위를 날아다니는 새 같은 배였습니다. 


우리는 멀리서 엔젤호가 다가오는 것이 보이면

엔젤호가 일으키는 높은 파도를 타기 위해

앞 다퉈 바다로 뛰어들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조금이라도

엔젤호 가까이 가려고 배 앞으로 헤엄쳐 나갔습니다.


배 가까이 다가갈수록 파도가 높아서

그만큼 스릴이 있기도 했지만 그 때는 친구들 간에

보이지 않는 묘한 경쟁 심리가 작용했기 때문입니다.

용감하게 보이고 싶었던 것이지요.

 

그렇게 엔젤호를 향해 헤엄쳐 가면

배에 탔던 여행객들은 우리를 그저 신기한 눈으로

바라보았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물 속에서

그분들에게 반갑다며 힘껏 손을

흔들어 주었습니다.


그러면 대부분의 여행객들도

반갑다며 같이 손을 마주흔들어 주었는데

그 때를 놓치지 않고 우리는 일제히 그 사람들에게

주먹감자를 날렸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대단히

죄송한 일이었지만 우리는 그때 그렇게

개구쟁이였고 철딱서니가 없었습니다.


혹시 이글을 읽는 독자 중에서

어린 우리에게 어이없는 일을 당하신 분이 계시면

이 자리를 빌려 정중한 사과의 말씀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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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도의 오동도 다리 공사 현장 사진입니다.>


 

그렇게 수영을 하다가 배가 고프면

우리는 수경을 쓰고 신항 방파제 밑을 뒤졌습니다.

 그곳에는 우리가 여름 내내 먹고도 남을 만큼의 홍합과

우렁쉥이가 널려있었기 때문입니다.

또래 친구 중에 나이가 어린 동생이나

잠수에 자신이 없는 아이는 육지에서 불을

피울 수 있는 나무 조각을 주웠고,


나이가 든 아이나 잠수에 자신이 있는 아이는

바다 밑으로 잠수해 들어가 홍합과

우렁쉥이를 땄습니다.

 

그래서 여름에는 항상 찌그러진

양은 냄비 하나 정도는 바닷가에 가져다 놓았습니다.

출출한 배를 채우기 위해 홍합을 삶아 먹을

냄비가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렇게

어린 시절의 여름 대부분을

오동도가 보이는 여수의 신항에서 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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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가끔 찾는 신항이지만

이제 옛모습은 하나도 보이지 않습니다.


그 당시는 수많은 화물선과

화물을 나르던 수 많은 노동자들로 북적였는데

지금은 화물선도 보이지 않고 노동자도 보이지 않습니다.

더구나 우리같이

수영을 하는 어린애는

찾아볼 수 없음은 당연한 일입니다.

 

세월이 가면 이러한 옛 추억도

기억 속에서 전설처럼 되는가 봅니다.

그 전설은 제 기억 속에 그대로 남아 있는데

그 전설속의 배경이었던 신항은 모든 것이 변했습니다.

가슴을 날마다 설레게 했던

여객선도 사라지고 낭만도 사라지고

지금은 높은 호텔의 빌딩숲 속에서 

조용한 적막만이 흐를 뿐입니다.

하기야 여객선이 있다한들 무슨 재미가 있겠습니까.

손을 흔들어줄 사람도 없고 주먹 감자를 날릴

개구쟁이들도 사라지고 없는데 말입니다.



by 장터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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