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 우리 집 파란 대문은
좁은 골목길을 한참이나 올라가야 보였습니다.
그래서 그 좁은 골목길엔 아직도 제 기억의 발자국들이
군데군데 남아있습니다.
골목길은 단순한 길이 아닙니다.
또래들에게는 소중한 놀이터이기도 했고
그 아이들을 보호해 주는 은신처이기도 했습니다.
새삼 생각해 보니
‘골목길’이라는 말을 해본지도 오래되었고
들어본 것조차도 오랜만입니다.
어렸을 적 골목길은 늘 또래들로 북적댔습니다.
한쪽에선 구슬치기를 하고, 또 한 쪽에선 딱지치기를 하고,
또 한 쪽에선 여자 아이들이 고무줄놀이를 하고
또 한 쪽에선 숨바꼭질을 하고도
남을 만큼 아이들은 골목에 차고 넘쳤습니다.
그렇게 서로 잘 놀다가도
어느 때는 엉켜 붙어 싸우기도 했지만
그래도 돌아서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오곤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어렸을 때는 왕따도 없었습니다.
딱지치기, 구슬치기 등 하루 종일 놀아도 다 못할
다양한 놀이들이 많았으니 왕따시킬 친구도 없었습니다.
따지고 보면 우리는 골목길에서
울고 웃고 놀고 싸우면서 어려서부터 우정을 배웠고
서열을 배웠고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인생을 배웠던 것 같습니다.
형들은 동생들 챙길 줄 알았고,
동생은 형들을 따를 줄 알았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사람이 살아가면서 가장 기본적인 덕목을
어렸을 적부터 골목 안에서 배웠던 것입니다.
<1930년 사진인데 지금의 교동오거리 부근입니다>
그래서 어릴 적 우리가 놀았던
그 골목길은 언제나 넓고 따뜻했습니다.
그리고 사람이 품어내는 사람다운 향기가 늘 베여있었습니다.
한데 지금의 도시에는 골목이 없으니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사라졌고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사라지고 없으니
세상은 따뜻함을 잃어가며 삭막해져 갑니다.
언제까지나 우리의 가슴속에
추억으로만 남아 있는 골목길.
그 골목길이 우리가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서서히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의 추억 덕분에 저와 제 친구들은
배는 곯았을지 몰라도 마음을 곯지는 않았습니다.
지금은 이 골목길 대신에
넓은 길이 있고, 넓은 길에는 온갖 차들로 북적입니다.
우리는 그 안에서 더 외롭고, 더 쓸쓸하고, 더 황량하게 서있습니다.
옛것을 버리고 새것을 취하는 것이
꼭 좋은 일 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비단
저 혼자만의 생각은 아닐 것입니다.
by 장터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