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호스피스 병동에서 찍은
'목숨'이라는 영화를 보았어요.
그 영화는 환자들이 병을 낫기 위함보다
편안한 죽음을 맞이하기 위해 오는 병동에서
찍은 다큐멘터리 영화였어요.
말기 암으로
고통받고 있는 박수명이란 사람은
아내와 아들과 딸을 둔 40대 가장이었어요.
그의 아내는 절규했어요.
“ 식물인간이라도 좋으니
제발 내 곁에만 있어 주세요.”
그러면서
남편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병간호와 항암 치료를 계속했어요.
두 아들의 엄마인 김정자씨는
고생고생해서 겨우 아파트 하나를 장만했는데
아파트에 입주하고 한 달 만에 암 판정을 받은 사람이었어요.
그녀는 한평생을 남편 뒷바라지와
아이들을 위해 살다가 이제 겨우 살만하니까
암에 걸린 주부였어요.
이렇게 그곳 호스피스 병동에서
죽음을 앞둔 사람들은 모두가 하나 같이
착한 사람들뿐이었어요.
'목숨'이라는
영화를 보면서 드는 의문 하나는
'왜 사람들은 죽음에 임박해서야 착해지는 걸까?'
하는 의문이었어요.
우리가 평소에 착하게 살면 좋을 텐데
생을 마치고 죽음에 임박해서야 착해지고
숙연해지냐는 것이었어요.
그것은 아마도 우리가 죽음에 임박해서야
그동안 우리가 집착했던 모든 것들이 헛되고
헛된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기 때문일 거예요.
기를 쓰고 얻으려 했던 많은 것들이
죽음 앞에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사실을
그때 비로소 깨닫게 되기 때문일 거예요.
우리가 살면서도 아무리 바빠도
가끔은 죽음을 의식하면서 살 수 있으면 좋겠어요.
우리가 죽음을 생각하며 살 수 있다면
지금보다 더 탐욕스럽거나 더 표독스럽지 않고
누군가의 가슴에 아픈 못질도 하지 않고
가끔은 나보다 약한 사람이나 나보다 어려운 이웃을
위하는 마음도 갖게 되지 않겠어요.
그러면 내 삶고
나를 둘러싸고 있는 주변의 모습도
지금과는 많이 달라지지 않겠는지요?
우리가 세상을
통째로 바꿀 수는 없겠지만
나와 내 주변만이라도 바꿀 수 있는
우리가 되면 좋겠어요.